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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발레> DB는 러시아예술을 세계적으로 알리는데 큰 공헌을 한 러시아 발레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프랑스에서 수입된 발레가 러시아만의 독자적 예술양식으로 발전해나간 과정 및 그 빛나는 성취를 시기별로 나누어 개괄하고 주요 안무가 및 작품을 소개한다. 또한, 주요 작품 해설과 관련 사이트 링크를 이용하여 실제 공연 감상을 위한 다양한 자료를 구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마지막 항목인 러시아 주요 발레 레퍼토리 소개를 통해 그간 국내에 알려진 러시아 발레의 한정된 레퍼토리를 벗어나 보다 다양한 발레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발레 DB 본문은 아래 문헌을 참조하여 작성하였음을 밝힌다.

 

 참고문헌:


Nancy ReynoldsㆍSusan Reimer-Torn/ 장정윤ㆍ이진수 옮김, <발레와 현대무용: 안무가와 그 작품>, 교학연구사,  1986

Mary ClarkeㆍClement Crisp/김민희 옮김, <세계 발레 작품 해설집>, 교학연구사, 1989
잭 앤더슨/ 서진은ㆍ허영일 옮김, <발레, 현대무용: 간추린 역사>, 삶과꿈, 1996

팀 숄/ 김복선ㆍ김태원 옮김, <프티파에서 발란신까지>, 현대미학사, 1998

이은경, <발레 이야기, 천상의 언어, 그 탄생에서 오늘까지>, 열화당, 2002

수잔 오/ 김채현 옮김, <발레와 현대무용: 서양 춤예술의 역사>, 시공아트, 2004

제니퍼 호먼스/정은지 옮김, <아폴로의 천사들: 발레의 역사>, 까치글방, 2014
The Ballets Russes and the Art of Design, The Monacelli Press, New York, 2009

각 항목의 러시아 위키피디아 사이트


러시아 발레 개요

"슬라브인들의 수용적인 성격, 여성스러움, 진취성 결핍, 뛰어난 동화 및 적응 능력은 그들을 다른 민족들에게 꼭 필요한 민족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완전히 자급적일 수 없다.<..> 다른 민족들의 사상을 그들보다 더 깊고 완전히 흡수하면서도 진정한 자기자신으로 남을 수 있는 민족은 없다." (A. 게르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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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ballet)라는 단어는 이탈리아어의 ‘발라레(ballare: 노래하고 연주하며 춤추다)’를 명사화한 ‘발레또(balletto)’ 또는 ‘발로(ballo)’가 프랑스 표기법으로 굳어진 것이다. 발레의 기원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궁정발레에서 찾는 것이 보통이나 그때까지만 해도 발레는 어디까지나 왕족과 귀족들의 여흥용이나 사교춤 수준이었고, 지금과 같이 극장예술의 형태로 나아가는 토대를 갖춘 것은 프랑스로 전파된 이후였다.

러시아 발레의 역사는 1673년 알렉세이 황제를 위해 독일의 무용단이 러시아에서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의 발레>를 공연한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그 공연은 성공리에 끝났는데, 이는 러시아 무용과 연극이 황실의 후원을 받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황실의 후원은 발레가 서유럽에서 예술형식으로서의 생존 가능성을 완전히 상실한 후에도 오랫동안 러시아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할 만큼 확고한 것이었다.

르네상스 시대 궁정에서 행해졌던 연극적인 사교춤에서부터 발레가 시작되었던 유럽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도 사교춤이 무대무용으로 정착할 수 있는 길을 닦아 놓았다. 표트르 대제의 1718년 칙령에 따르면 귀족은 여러 회합을 주최하고 거기에 참여해야만 했다. 야회에서 무용은 필수적이었다. 발레는 연극적인 쇼가 아니라 모방하고 내면화해야 하는 육체적 처신의 기준, 다시 말해 이상화된 처신 방식이 되었다. 요컨대, 고전 발레는 러시아에 예술이 아닌 '예법'으로서 도입되었던 것이다. 표트르 대제가 연회에서 직접 춤을 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짜르는 당대 유럽 최고의 발레 마스터가 영광으로 여길 만큼 카브리올을 멋지게 보여주었다.”
(А. Плещеев, Наш балет, СПб., 1896, с. 30)

발레는 러시아에 도입되면서 궁정 예법으로서뿐만 아니라 군사적인 측면과도 깊은 연관을 지니게 되었다. 페테르부르크 국립발레학교는 황실극장들보다 먼저 설립되었다. 그 기원은 무도회장이 아니라 황실 사관학교(Импера- торский сухопутный шляхетский кадетский корпус, 1731 설립)에 있었는데, 사관학교 자체가 독일과 프랑스 기관을 모델로 한 것이었다. 1734년 프랑스 출신의 무용수이자 발레 마스터인 쟝-밥티스트 랑데는 이곳에서 젊은 사관 후보생을 가르쳤고, 안나 여제는 그 결과에 감명받아 공식 무용학교 설립에 동의했다. 4년 후 랑데는 황실 하인 자녀 24명과 함께 학교를 열었다. 3년 과정인 이 발레 학교는 1756년 예카테리나 2세가 설립한 황실 발레극장의 토대가 되었다.
랑데는 오랜 서유럽의 전통에 의지하고 있었다. 발레와 펜싱 사이의 연관성, 그리고 더 보편적으로 춤과 군사작전 사이의 연관성은 최소한 이탈리아 르네상스까지 거슬러올라간다. 그러나 이 연관성이 러시아에서보다 어 강하게 확립되고 유지된 곳은 없다. 이곳에서 무용수들의 훈련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군대 스타일의 단련법과 조직화라는 특징을 확립하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서구에서는 오래 전에 포기한 실제 규모의 전투장면이 러시아 발레에는 18세기와 19세기 내내 등장했다. 정확하게 줄지어 대칭 대형으로 정렬한 무용수들의 ‘부대’가 군사전문가들의 (그리고 엑스트라 수백 명의) 도움을 받아 무대에 오른 것이다.

이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서구 발레가 동방의 정교와 공명했다는 점이다. 러시아 정교회의 연극적 분위기와 시각적 아름다움, 음악의 힘은 ‘관객’을 별세계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무도회나 공식행사에서 차르의 입장은 정교하고 고도로 무대적인 행사였다. 여기서 전원 배역을 할당받은 신하들은 장려한 문이 열이고 군주와 수행원들이 화려하게 등장할 때 외경 속에 서 있었다. 그리고 음악 반주가 곁들여진 전체 행진이 이어졌다. 이런 종교 및 궁정 의례로부터 러시아 발레 무대를 빛낼 호화로운 예술 제작물들까지는 딱 한 걸음이었다.

예카테리나 2세의 극장예술에 대한 관심과 나라에서 주관하는 극장의 독점사업을 위해 취한 여왕의 조처들은 사실상 러시아에서의 발레의 전망을 확고히 보증해준 셈이다. 1756년 여제는 황실극장제도를 확립하였고 10년 후에는 황실극장을 이끌어갈 이사회를 조직, 1773년에 페테르부르그 볼쇼이 극장 건축을 준비하였고, 1779년에는 황실극장학교(배우와 가수, 무용수를 훈련)를 설립하였다. 18세기 말엽에 이르러 발레학교는 잘 갖춰진 황실극장 제도의 중요한 일부분이 되었으며, 러시아 황실발레의 형성기와 관련된 유럽의 발레 마스터들 가운데에는 낭만주의 이전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안무가로 손꼽히는 사람들이 여러 명 끼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