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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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체첸 민족 공동체가 이러한 방식으로 봉건관계가 형성되고 발전해 나간 시기는 16-17세기였다. 체첸 봉건사회는 몽골의 침입과 그 이후 골든호르드의 지배, 티무르제국의 점령 등으로 인해 더딘 발전과정을 보여주었다. 즉, 체첸과 잉귀쉬 민족들은 북카프카즈의 카바르딘이나 다게스탄의 다른 민족들보다 사회-경제 발전단계가 뒤떨어졌다. 체첸은 이미 이시기 이전부터 다게스탄 영주들에 종속적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다게스탄의 '샴할 카지쿠무흐' 영주가 체첸에 대해 가장 강력한 지배적 영향력을 끼쳤다 . 즉, 체첸은 자신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많은 세금을 카바르딘과 다게스탄의 영주들에게 바치고 있었다. 체첸의 전통민요에는 벌써부터 이 당시에 카바르딘과 다게스탄의 '샴할 카지쿠무흐'와 '아바르' 영주들에 반발하는 체첸 민족의 저항의 이야기가 전래되고 있을 정도로 다른 민족과의 갈등의 역사가 배태되고 있었다. 역사적 단계에서 본다면, 체첸과 잉귀쉬인들은 민족 형성의 역사부터 국가 형태의 발전 단계를 한번도 가지지 못했다. 즉, 종족연합도 전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17세기에 들어와서야 체첸의 개별 공동체(тайп)의 상당한 수가 몇 개의 지역에서 공동체사회(общества) 를 이루고 있었다. 상기에 언급한 것같이 이 공동체사회는 씨족공동체사회로부터 봉건제사회로 이행하면서 늦은 발전단계를 보이고 있었다. 체첸사회에는 왕과 같은 지도자나 왕위계승자와 같은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국가적 개념의 통치자가 부재하였다. 이 공동체사회의 주된 산업은 목축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양 가축이 지배적이었다. 벌꿀 재배와 사냥도 중요한 산업 수단이었다. 체첸 봉건제사회에 관한 해석에 관련되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일부 러시아역사학자들은 체첸은 자신들의 태부족한 식량과 생활유지를 위해 다른 체첸 씨족사회를 공격할 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의 공동체를 침략하는 약탈경제가 주된 생활기반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관점에 반대하여 일부 러시아학자들과 체첸의 지역학자들은 약탈경제는 아주 일부에 불과하였다고 주장한다.  

  17세기부터 산악지역의 체첸 민족은 비옥한 영토인 <순자(Сунжа)>강으로 이주를 시작하였다. 17세기중엽에 체첸 공동체는 제정러시아의 정책에 의해 이미 이 지역에 이주해있던, 후에 러시아 용병으로 변한 카자크 농민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들은 테렉(терек)강과 순자강 사이에 러시아정부의 허락을 받고 살고 있었는데, 체첸인들의 이주는 그들과 마주치게 된 형국이 되었다. 체첸인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해오자 그들을 직접적으로 통제한 민족은 카바르딘 영주들이었다. 체첸인들은 그들에게 일정한 세를 지불해야만 거주가 가능하였다.

  체첸은 18세기 중반이후에 그들의 거주지에서의 원할한 농업활동 등을 보장 받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체첸공동체보다도 더 강력한 힘을 소유하고 있던 카바르딘 민족 등 이웃 민족들에 지속적인 압박을 받게 된다. 1757년에 '순자'강 유역의 체첸 공동체는 드디어 카바르딘 민족에 대항하여 봉기를 일으킨다. 체첸은 봉기 초기에는 카바르딘 민족의 일부 공동체를 자신들의 거주 지역으로부터 추방하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내 러시아정부가 개입하는 바람에 봉기는 진압되었다. 이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고 있던 러시아는 체첸과 잉귀쉬민족에 대한 영향력 행사에 혈안이 되었던 카바르딘과 다게스탄 영주들의 입장을 지지, 체첸 민족들은 이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러시아정부는 이 지역의 실질적인 통치권을 누리던 지역영주들 - 특히 카바르딘와 다게스탄 영주들 –을 통해 식민주의 정책인 간접 통치 방식을 선택했다. 이런 관계로 체첸 민족의 불만은 증대되었다. 반면, 다게스탄과 카바르딘 지역영주들은 북카프카즈에서 자신들의 세력권을 팽창하려고 했던 오스만 투르크와 이란, 크림족 등의 공격에 반대하여 러시아정부를 적극 지원했다. 

  북카프카즈 지역에서 러시아의 광범위한 식민지화 과정은 18세기 중엽부터 본격화되었는데, 러시아귀족들은 거대한 토지를 매입하였고, 빠른 속도로 무역이 이루어졌다. 도시와 도로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급속한 식민주의 정책은 특히 산악지대에서 테렉강 유역의 경작지로 이주한 체첸인들과 충돌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 이 당시 체첸의 산악지역에 거주하는 체첸족에 대한 러시아정부의 입장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평지보다도 산악지역에는 오스만 투르크의 영향력이나 선교사들의 활동으로 범이슬람주의의 영향이 점차로 확산되어 러시아는 체첸에 대한 직접 통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산악지역에 있는 체첸인들을 평지로 이주시키는 강압정책을 펼쳤는데, 이는 도리어 체첸족의 反러시아 의식을 심어주는 결과가 되었다.  

  체첸 인들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기억은 강제이주 사건이 될 것이다. 체첸 인들은 카프카스에서 가장 군사화된 성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체첸 민족은 스탈린의 강제 집산화 정책에도 매우 부정적이었다. 스탈린은 당시 체첸 민족 이외에도 카라차이, 발카르, 메스케티안 민족들을 강제 이주시켰으며, 북 다게스탄에 거주하던 칼믹 민족을 볼가 지역으로 이주시켰다. 강제이주 정책으로 해당 민족들은 큰 고통을 받았으며, 특히 체첸 인구는 1/3이나 1/2까지 감소하는 일이 일어났다.

  강제 이주 정책으로 체첸 인들을 둘러싸고 나타난 정치적, 사회적 환경은 어떠한 민족 요소나 민족 정체성으로 발전해 나갔는가?

 소연방 당국의 통제 정책으로 체첸 인들의 내면에 반 소비에트 의식이 철저하게 심겨지고 민족적 자존심이 견고해 졌다는 사실이다. 체첸 인들은 13년 동안 조국을 떠나 있었다. 강제 이주 당한 이후 체첸 인들에게 이주, 교육의 기회, 직업 선택은 소비에트 정부의 엄격한 통제 하에 있었다. 그들의 문화적, 사회적 삶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소비에트 체제 하의 엄격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체첸 인들이 중앙아시아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었을까?

  체첸 인들의 문화와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가 많았지만, 이들은 강력한 종교적 신념으로 이를 극복해 나갔다. 강제 이주 이전, 북카프카스에 거주할 때는 체첸 북부 지역에 널리 퍼져있던 이슬람 낙쉬반디 수피즘과 남쪽 산악 지역의 카디리 종파의 수피즘을 체첸 인들은 주로 신봉하고 있었다. 체첸 인들의 종교적 의식은 매우 투철했으며, 이러한 요소가 중앙아시아에서 체첸 인들을 강하게 결속시킨 하나의 원동력이 되었다. 솔제니친은 강제 이주 이후에 소비에트 연방 정부에 굴복하지 않은 민족은 체첸 인들이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1943년에 체첸 내의 모스크들은 모두 폐쇄되었고, 체첸 인들이 조국으로 다시 돌아오도록 허용된 1960년대까지 모스크는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체첸 인들이 조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더욱 더 종교적이고 전투적인 민족으로 변해있었다. 강제 이주는 민족 상호 간의 분쟁과 분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고, 이는 체첸 인들의 민족적 단결의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상호간에, 혹은 지역적으로 분쟁을 겪었다.

  다게스탄의 아우크호브스키 지역에 거주하는 체첸-아킨즈(Chechen-Akkins) 민족 그룹도 1944년 강제 이주되었다. 이들 중 대부분은 1950년대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미 그들의 옛 땅은 대부분 다게스탄의 라크 민족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소비에트 연방 정부가 새로운 지역으로 이주민들을 이주시키면서 발생하는 문제도 있었다. 1920-1950년대 모스크바 당국은 산악 지역의 인구를 평지로 이주시켰는데, 산악에서 거주하던 다게스탄 민족 그룹인 아바르, 다르긴 민족과 평지에 거주하는 쿠믹 민족과 코사크, 러시아 농민들 간에 민족 분규 및 갈등이 일어났다.

  체첸 민족이 강제이주 당한 이후 과거 이 지역의 도시들, 마을들의 명칭도 변경되었다. 수만 명의 러시아인들이 체첸과 잉구쉬 민족의 거주지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비밀연설이 있기 이전, 체첸의 민족주의자들이 1954년 초에 중앙아시아에서 카프카스로 전격 이주한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이들은 체포되어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보내진 일이 있었다. 흐루시초프의 연설 이후에 먼저 25,000-30,000 명 정도가 1956년 말까지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문제가 생겼다. 과거의 주인이 재이주하면서 이미 그곳에 정착한 사람들 간에 분쟁이 일어났다. 1944년 체첸과 잉구쉬 민족이 강제 이주 당했을 때에 체첸-잉구세티아 공화국의 접경지대인 북오세티아와 다게스탄 지역으로부터 77,000명 정도의 러시아인들이 이주해왔다. 체첸 인들이 귀환해서 과거의 땅을 다시 요구하면서 여러 가지 소요 사태가 일어났다. 특히 1958년에 그로즈니에서 체첸인과 러시아인 사이에 심각한 분쟁 사태가 발생했다.

  체첸 인들이 집과 땅을 돌려받기를 원하면서 이미 그곳에 와서 살고 있던 사람들과 갈등이 일어났다. 체첸 인들이 가졌을 배신감 뿐 만 아니라 상호 간에 의심과 불신으로 가득 차 소비에트 민족 들 간에 발생하는 이질적 감정으로 말미암아 체첸 인들의 기억에는 상처 의식이 강하게 남았다.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에 체첸 인들이 과거에 살았던 고향 집과 땅에는 이미 러시아인들이 정착해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체첸 인들이 귀환한 이후인 1957년에 스타브로폴 지역에 살고 있던 러시아인들이 체첸 인들의 거주지로 집단 이주를 단행하였는데, 이것도 체첸 인들의 민족적 정서에 큰 상처로 남아있게 되었다. 체첸 인이 집단적으로 귀환하던 그 해에 러시아인들이 과거 체첸 인의 거주지로 이주했다는 사실은 체첸 인들의 민족 정서에 상처를 입혔으며, 체첸 인들은 소연방 정부에 대한 반감을 강하게 가졌다.

  체첸 민족의 거주지에 이주해서 살았던 이들은 러시아인 뿐 만아니라 카자키인, 오세티아인, 그리고 다게스탄계 민족 그룹이었다. 체첸 사람들은 다른 지역으로 가서 새로운 집과 마을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소비에트 정부의 반 체첸 정서를 느끼며 살아갔다. 과거의 집과 땅에는 다른 사람들이 이미 정착해 있었으므로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임시 거주지를 마련하고 공동묘지를 복원하고 이슬람 모스크를 정비하였다.

체첸인의 역사적 기억, 혹은 집단 기억 속에서 강제 이주에 관한 민족 이미지는 민족 정체성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집단 기억은 해당 민족의 정체성 형성과 매우 관련이 깊다. 1944년의 체첸의 역사적 기억은 집단 기억으로 해석될 수 있다. 강제 이주의 기억은 민족 공동의 기억이다. 특히 러시아에 저항한 체첸의 역사적 관점에서 집단 기억은 소비에트 연방의 집단 정체성이다.

 
이러한 정체성은 가족이나 부족, 그리고 종교적 동일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체첸 민족에게 매우 적합한 역사적 모델은 강제 이주의 기억이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한 이후 체첸 민족의 집단 정체성, 그리고 공동의 민족 동질감은 1957년에 중앙아시아에서 예전의 체첸 땅으로 재 이주하였을 때도 동일하게 작용하였다. 집단적 의식의 기저에는 결국 강제적으로 이주를 당했다는 역사적 기억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족의 구성원들이 경험하는 역사적 사건은 집단 기억 속에서 존재하는데, 강제 이주를 당한 당사자들 뿐 만 아니라 후손들에게도 그 영향력이 미친다. 중앙아시아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열차에서 죽거나 정착 1년 만에 죽어간 숫자가 엄청나다는 참혹한 역사의 기록도 사람들 사이에 전승될 것이다. 강제 이주는 개인 및 집단 정체성을 상당할 정도로 변화시켰으며, 이 사건은 정당하지 않은 사건으로 기억되며, 반 소비에트 감정과 정서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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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진, "체첸전쟁의 기원 - 러시아와 체첸의 역사적 갈등관계를 중심으로" (슬라브학보 2005년, 20-2호)>
정세진, "체첸 민족의 정체성 형성에 관한 소고" 러시아어문학연구논집, 44집, 201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