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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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생활과 민족 전통의상


의생활
은 인간이 자연상태를 벗어나 문명상태에 들어갔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표시일 뿐만 아니라, 전통사회에서는 신분의 차이를 보여주고 나아가 사회적 신분을 차별화하기 위해 고도의 전략이 구사되었던 대상이기도 하다. 또한 1917년 혁명 이후 소비에트체제 건설의 시기에 의생활은 새로운 ‘사회주의적 인간’을 만들기 위한 중요한 실험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의복은 그 원료, 제조의 과정, 원가, 문화의 고착성, 유행, 사회계층 등의 모든 문제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의생활은 식생활과 주생활과 비교해 외부세계의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러시아 및 유라시아 민족들의 전통의상은 18세기 중반에서 19세기에 걸쳐 그 모습이 만들어졌지만 몇몇 특정 요소들은 그 기원을 멀리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고래로부터의 전례들은 그 함축된 신화적, 의례적 의미 덕분에 수 천 년 동안 지속되어온 설득력있는 요소들이다. 예를 들어, 축일에 입는 농민들의 전통의복에서 붉은 색이 주조를 이룬 이유나, 여성들의 머리카락이 갖는 상징적 의미들과 머리장식의 상징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잘 남아있지 않지만 그것은 고대 슬라브인들의 자연숭배, 샤머니즘의 풍속, 씨족사회에서 행해진 종교의식의 흔적이라는 증거가 제시되기도 한다.


 

                     

 
                     <좌> 랴잔 주 여성 전통의상                   <우> 탐보프 주 여성 전통의상
 

 

중세 러시아의 농민의복은 일정한 체계가 없는 재단과 무채색의 색감 등 매우 단순한 형태를 띠었다. 엄한 사치금지령(sumptuary law)의 압박이 농노제 하에서 살았던 일반 사람들의 의복의 소재와 형태, 색채를 지배하였고, 의복에 장식을 하거나 바꾸지 못하도록 행동을 억압했다. 이는 특히 러시아에서 심하게 나타났는데, 1861년에 가서야 농노제가 폐지되었기 때문이었다. 복장을 규제하는 엄격한 법규가 사라지면서 농촌에서도 점차 의복에 공을 들여 장식-고대부터 존재한 상징들도 포함해서-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역마다 특색이 강해져, 서로 다른 지역은 물론 서로 인접해있는 마을끼리도 확연히 차이가 났다. 광활한 영토의 러시아는 따라서 다양한 민족의상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 후 이러한 특징적 의복은 개인이 속한 집단을 표시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19세기에 지역단위로 발전한 민족의상의 전통은 산업화 이전에는 꾸준히 지켜졌으며, 농촌생활의 보수적 성향을 드러내 주었다. 고립된 자급자족적 농촌마을에서는 공동체의 도덕과 윤리의식을 지배하는 엄격한 규칙이 있었는데, 개인의 일상에서부터 혼인의 중매에 이르기까지 매우 세부적인 규정들이 존재하였다. 가장 미천한 농민의 세계에서는 예외가 있을 수 있지만, 빈곤한 생활 속에서도 생애의 각 단계와 연령에 맞게 남성, 여성, 아이들의 의복이 규정되어 있었고, 매일 입는 일상복 이외에 교회갈 때, 축일에, 혼례 때 입는 의복으로 세분화 되었다.



       
        
                                            우크라이나 민족의 전통의상 

많은 경우에, 민족의 전통적 의생활에서 남성복보다 여성복에 대한 논의가 많은 것은 남성이 바깥 생활과 더 많이 접촉하고 변화에 더 열려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몇몇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남성들은 농민, 목수, 대장장이 등 그들의 직업에 해당되는 좀더 일반화되고 동일한 의복을 채택하는 편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여성들의 삶은 가정이 중심이었고 다소 격리된 편이었으므로 공동체 문화의 전승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여성들의 전통복식은 특히 중요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진다. 전통 복식의 차원에서 보면 18~19세기의 농민의복은 거의 비슷한 형태를 이룬다. 동유럽과 서유럽 농민 전통의복의 기본은 남성들의 경우에 바지, T자형 셔츠, 그리고 벨트가 주를 이루고, 여성들은 스커트와 에이프런이 기본이었으며, 양쪽 모두 계절이 추워지면 그 위에 겉옷을 입었다. 이처럼 매우 단순한 형태의 의복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느리게 진화하기는 했지만, 그 고색창연함과 더불어 일정한 장식적 요소들과 주술적 모티브가 살아남았다는 것은 민족 전통 의복의 가장 흥미로운 면이기도 하다.

 

러시아 민족의 전통의복은 로마 가톨릭에 토대를 두고 있는 서유럽권 문화의 지배에서 벗어나 발전했기 때문에 거의 유행을 타지 않았으며, 특히 농민공동체는 화려한 색깔의, 공들여 빽빽하게 자수를 놓은 의복들을 통해 정교한 전통의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양한 민족들의 전통복식의 형태가 지역 언어, 그리고 풍습과 함께 공존하고 있는 예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참고문헌>

 

-Fernand Braudel, Civilisation matérielle, économie et capitalisme : XVe-XVIIIe siècle.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일상생활의 구조』, 주경철 옮김, 까치, 1996)

-Diana Crane, Fashion and its social agendas : class, gender, and identity in clothing.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0

(다이애너 크레인, 『패션의 문화와 사회사』, 서미석 옮김, 한길사, 2004)

-글레부쉬킨 개인 콜렉션 http://www.glebushkin.ru/index.html


                                               민족 전통의상의 특징 
 

전통의상은 한 나라의 문화적 유산을 보존할 뿐만 아니라, 역사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며, 민족적 연대의 감정을 시민에게 부여하고, 나아가 애국주의를 표현하는 기능을 한다. 여러 세기 동안 다양한 민족들의 전통의상은 러시아 정체성과 문화의 일부였다. 민족 전통의상의 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는, 기후와 지리, 사회적 신분, 직업, 각 민족 나름의 고유한 색깔이나 다양한 상징들, 그리고 시대를 지적할 수 있다. 아울러 민족의 전통의상은 계절, 나이, 직업, 결혼여부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띠기 마련이다.


1917년 혁명 이후 소비에트시대에 이 전통은 잠시 중단되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전통문화의 여러 측면들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함께 전통기술이 부활하면서 현대문화에 그것을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현대에 들어서 민족 전통의상의 모티브는 가구, 홈 디자인, 옷 등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대러시아인의 의생활


 

러시아인들의 의복은 각 지역의 기후와 자연환경에 따라, 그리고 이용할 수 있는 재료의 종류에 따라 정해졌으며, 그 초기의 형태는 고대의 키예프 루시 시대에서 나타난다. 비잔틴제국과의 종교, 정치, 경제, 문화적 연관성은 특히 귀족들의 옷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바랴기 무사계층 및 스칸디나비아 인근지역 민족들과의 상호관계, 그리고 흑해를 통한 서유럽 지역과의 교류와 무역은 고대인들의 의복 발달에 영향을 주었다.

 

표트르대제의 시대는 생활의 모든 측면에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러시아의복의 역사에서 두 가지의 중요한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 러시아 상류층은 서유럽 국가들 가운데 독일식 복장을 채택하도록 강요를 받았던 반면에, 하층민들과 농민들은 그러한 개혁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전통적 복장의 형태를 보존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러시아인의 전통의상은 단순함과 유려하게 흐르는 자연스런 실루엣이 특징적이다. 일반적으로 화려한 장식성이 두드러지며, 여러 층의 앙상블로서 몇 벌의 옷을 껴입는 방식이다. 사라판 앙상블은 18세기 전환기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여성들의 복장은 셔츠 위에 사라판 드레스를 입고 벨트를 여미며 그 위에 에이프런을 두르는 방식이다.

 

아울러 농민의 민속의상이 있다면 도시민의 민속의상도 있었다. 가장 전형적인 농민의상으로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짚신(рапти: rapti)과 모자이다. 그리고 가슴 앞부분이 비스듬하게 트인 남자 셔츠(косоворотки: kosovorotki)와 바지, 여성들의 사라판(Сарафан: sarafan)은 가장 일반적인 기본 의복이다. 겨울에는 그 위에 털외투와 펠트를 댄 짚신을 신었다. 러시아 민족의상은 특히 매우 아름다운 자수와 레이스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는데, 주로 시골의 여성장인들의 솜씨에서 나왔다. 한편, 도시민의 의상으로 긴 가죽코트나 털코트에, 긴 검정색 부츠를 빼놓을 수 없다. 카자키 출신들은 그 위에 그들 특유의 높은 모자를 썼다.

 

19세기에 특히 민족문화가 부활하는 동안에 민속의상이 유명해졌다. 러시아제국의 궁정에서도 러시아 스타일(길게 튼 소매, 화려한 자수, 두건)의 드레스를 채택하였다. 사라판은 농민여성, 상인여성, 프티 부르주아 등 여성들의 일상의 의복이었다. 19세기에 방직산업이 발전하고, 1861년 농노해방 이후에 산업화와 도시화가 서서히 진행되면서 직물과 의복에도 영향을 주었다. , 면직물이 아마 및 대마와 경쟁하기 시작했고,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밝은 패턴의 옥양목은 집에서 손으로 짠 마직 제품을 대체하였다. 전통적인 두건은 점차 화려한 꽃무늬의 숄과 머리수건으로 대체되었다.

 

이와 같은 의복의 형식은 1917년 러시아혁명과 함께 단절되고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수많은 민속예술과 전통은 소비에트체제에 매우 낯선 것으로 인식되어 쇠퇴를 겪었다. 그 가운데 몇몇 지역에서 레이스 짜기와 숄 뜨개질 같은 어떤 직조기술은 유지되기도 했지만, 민속의상을 만들어 입는 관행은 완전히 사라졌다.


 

우크라이나인의 의생활


 

민족의상은 러시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일반적으로 긴 셔츠(рубаха), 타이트한 바지, 끈 장식, 자수 이외에 다양한 장식적 요소를 이용하였다. 대러시아인들과 구별되는 특징으로서, 우크라이나 민족의상은 루바쉬카를 바지 안에 넣어서 입어야 했다. 다른 슬라브 민족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옷을 입었던 것이다. 바지는 끈이나 줄로 고정하였는데, 우크라이나 의상의 구별되는 특징은 바지의 폭이 매우 넓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이 바지를 샤로바리(шаровары)라고 불렀다. 가장 자주 이용되는 색은 카르미노보-붉은 색이며, 옷을 다 입은 다음에 모자를 썼다. 우크라이나 민족의상은 여성의 옷은 벨라루시와 가장 비슷하다. 기본은 긴 셔츠인데, 여성들의 셔츠에는 여러 다양한 장식적인 무늬를 넣었다. 셔츠 위에는 밝고 현란하고 장식이 많은 그런 치마를 입었다. 우크라이나 민족의상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색상이 매우 밝고 알록달록하다는 특징이 있다.

 


벨라루시인들의 의생활


 

벨라루시인의 민족의상은 위에서 언급한 두 지역의 민족의상과 비슷하다. 동슬라브족에서 파생되어 나왔기 때문에 서로 비슷할 수 밖에 없지만, 벨라루시인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특성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의복은 흰색과 붉은 색의 콤비네이션인 것이 특징적인데, 린넨과 울로 만들어진 흰색 바탕의 옷에 붉은 색 실로 상당히 많은 자수문양을 넣었다. 벨라루시인들은 오직 천연옷감(흰색 천에 붉은 실)으로 민족의상을 만들어 입도록 요구하였다.

한편, 벨라루시의 민족의상은 장식이 있다. 보통은 식물을 이용해 기하학적인 무늬를 짜 넣는다. 남성복장의 중요한 하나의 특징은 바로 허리에 두르는 띠(пояс)이다. 이것은 단순히 바지를 고정시키는데 쓰는 것이 아니고 주로 종교행사에서 사용되었다. 특히 순수한 자연재료를 이용하고 장식을 많이 넣은 벨라루시의 민족의상은 최근에도 여러 국가들에서 예술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여성들은 사라판, 풍부하게 수로 장식한 긴 스커트. 그리고 애프런(фартуки), 소매없는 긴 상의(безрукавки), 스카프, 두건(кокошники) 등을 애용하였다.

 


<참고문헌>


http://nacional-kostyu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