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소비에트 러시아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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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정교는 1천 년간 지속된 러시아 민중의 삶이며 역사, 이데올로기였다. 러시아정교는 소비에트시기에 매우 강력한 탄압을 받았다. 소련의 무신론 정책에 의해 러시아정교는 국민들의 정신적, 신앙적 가치의 기능을 상실했던 것이다. 그러나 1991년 소비에트 체제가 붕괴되었다. 러시아 사회는 급격한 변화에 휩싸였다.

민주화와 시장경제라는 체제전환기 러시아 사회는 새로운 이념적 가치를 필요로 하였다. 러시아는 세계의 강국으로 부상하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경제 발전 프로그램을 가동하였고 푸틴 시대에 이는 일정한 부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독립 이후 러시아 사회의 가장 큰 이슈는 경제 부흥이었다. 러시아 정부도 이러한 관점에서 가격 자유화 정책 등 러시아 경제를 단기간에 급속도로 발전시키기 위한 급진적 경제 개혁에 몰두하였다. 소비에트 붕괴 이후 지난 17년간 러시아 사회는 매우 급진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경제적 이슈에만 집중하면서 러시아라는 거대 국가는 가치관의 혼란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소비에트의 붕괴는 세계 제 일등국가의 지위를 누리던 러시아 국민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하에서 러시아정교는 러시아 국민들의 이념적, 정신적 공백을 채워줄 새로운 대안으로 나타나기 시작했고, 러시아정교는 러시아 민족주의의 부흥에 일정한 역할을 담당했다. 포스트소비에트 시기에 러시아 민족주의는 러시아의 고유한 정신적 체계인 러시아정교와 결부되어 발전했다. 포스트 소비에트시기에 러시아정교와 관련된 정신은 특히 정교 근본주의이며, 이 사상은 러시아의 전통적인 유라시아주의 및 신유라시아 등, 정교 이념의 패러다임 성향을 보였던 것이다.

러시아 정교회 부활절 예배(2010.04.04 newsis)


제정러시아와 소비에트 러시아, 그리고 현대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정체성이 동양인가 혹은 서양인가 하는 전통적인 러시아 정체성의 담론, 19세기의 서구주의자와 슬라브주의자의 사상적, 이념적 분화, 1920년대의 고전적 유라시아주의 논쟁, 볼셰비키 혁명에 반대한 20세기 전반기의 종교 철학가들의 이념적 특성은 러시아정교와 관련된 부분이 상당수 포함되어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은 포스트 소비에트시기에도 새로운 이념적 대안으로서 러시아정교는 다양한 분화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사상(思想)의 러시아'라는 전통적인 러시아적 특성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잇는 것이다.

제국러시아의 러시아정교의 역사적 담론은 범슬라브주의를 중심으로 고찰되었다. 과거 제정러시아의 보수적 인텔리겐차는 러시아정교를 러시아의 국가성과 민족성의 대표적 특성으로 간주하고 이를 세계적 정신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지적, 정치적 의도로써 범슬라브주의의 관점에서 러시아사회를 개조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전통은 오늘날에도 전승되고 있는 특성으로서, 러시아정교회의 내부적 역할이 무엇이고, 이를 바라보는 러시아 사회 내의 다양한 시선은 무엇인지를 러시아 정교의 본질을 러시아 사회의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통해 규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국가-교회 관계를 통해서 본 러시아정교의 특성

포스트소비에트 시기 러시아 정부가 러시아정교회와 상호 밀접한 관계, 혹은 배타적 관계를 가질 것인지, 혹은 서구 교회의 형태처럼 교회와 국가의 관계가 더욱 더 분리되는 상황으로 전개될 것인가는 전체적으로 러시아정교의 이념과도 상호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즉 러시아정교가 국가와 사회 내에서 어떤 역할과 기능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부분은 전통적인 러시아적 주제였다.

러시아에서는 정교가 로마 가톨릭, 이슬람, 불교처럼 그 자체로 초민족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전통적이고 역사적인 화두가 존재해왔다. 기독교세계의 하나의 큰 구심점으로서 정교는 전세계적 종교성의 본질을 지향해왔다. 동방정교 자체는 국제적인 다복합적 특성과 초민족성이라는 가치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정교는 민족적 특성에 따라 자율적인 흐름을 보여주었다. 세르비아, 루마니아, 러시아에서는 독립적 민족 교회로 발전해왔다.

동방정교는 민족주의적 발전 단계를 거쳤으며 러시아정교도 '러시아 민족 종교'의 담론으로 교회 안과 밖에서 그 역사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러시아인의 생활과 정치에 있어서 가장 고려해야 할 부분은 국가와 교회의 상호 관계인데, 이는 페레스트로이카나 포스트소비에트 시기에 갑자기 출현한 특별한 이슈는 아니었다. 소비에트 시기에도 논의의 대상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지만, 공산당의 이익에 따라 러시아정교회의 위상이 정해졌었다.
 
포스트소비에트 시기에 종교와 관련된 특별한 현상은 다양한 종교 법안의 제정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권력과 종교 단체와의 관계, 특별히 러시아인들의 중심적 신앙인 러시아정교와 국가와의 관계는 아직도 분명한 형태로 규정되어있지는 않다. 즉 체첸 전쟁을 전후해 이슬람을 포함, 러시아 내의 다양한 종교적 종파들이 정기적으로, 혹은 공개적으로 정부의 총체적인 종교 정책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사상가들은 제정러시아 시대부터 정교회와 정부의 종교정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유지해왔고, 이러한 전통은 역사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 19세기말과 20세기에도 베르자예프, 레온티예프, 로자노프, 그리고 포베도노스체프는 제정러시아와 소비에트의 교회와 국가와의 정책을 비판한 적이 많았다.

그렇다면 포스트소비에트 시기에 러시아정교의 민족주의적 경향은 어떠한 내면적이고 도덕적인 이데올로기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첫째, 가장 핵심적인 내용으로 '신성한 러시아'라는 러시아의 전통적 개념이다. 역사적으로 서구 가톨릭과 이슬람 세력권에 둘러싸인 상황에서도 러시아정교는 1천년을 지탱해 오면서 러시아 국민의 보편적 의식으로 정착했다. 거룩한 러시아는 메시아주의의 이념으로 정의되었다. 즉 '모스크바 제3로마'설은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의 붕괴이후에 기독교적 신앙(christianity)이 러시아에서 그 진정한 표현을 발견한다는 의식이다.


러시아는 지상의 제국이며, 동시에 천상의 성스러움을 부여받은 신정 국가이다. 슬라브인들은 세계의 나머지가 자신들에 의해 신성한 이익을 쟁취하게 되었고, 진정한 기독교 정신을 향유하게 되었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가 정교로 보호받고 있는 성스러운 공간이라는 이념은 러시아인의 핵심적 사상이다. 즉 러시아는 신념, 민족, 문화가 상호 연결되어 있는 정신적 세계라고 강조되었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러시아정교의 '심포니아' 개념을 매우 중요시 여겼다. 이는 국가, 사회, 교회, 개인이 상호 조화로운 세계를 창출하자는 정교 정신의 핵심이다. 즉 국가와 교회 사이의 조화, 협정, 연합 등으로 해석되었다. 이러한 전통적 개념은 포스트소비에트 시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핵심적 가치로 수용되고 있다.

둘째, 소비에트 러시아의 교회-국가 전통은 포스트소비에트 시기에는 매우 변화된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데, 러시아정교와 관련된 민족주의적 경향이 매우 강력한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러시아 정부도 종교 관련 법령 제정을 통해 교회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으며, 교회는 하나의 사회적 결속력을 가질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특히 1999년 이후로 푸틴 정부를 포함하여 러시아사회에서 반서구주의 기류가 강하게 나타났다. 소련붕괴이후 서구와 접촉을 가지면서 형성된 반 종파심의 출현은 그 자체로서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냉전시대 초강국이던 전체주의 체제 아래에서 러시아정교회는 공식적으로 세계의 평화를 강조하였으며, 외면적 평화의 전도자로 국제사회에서 활동을 하였다.

어떤 측면에서 오늘날 이 전통은 계승되었는데, 러시아정부는 국제사회에서의 평화와 공존의 이상을 러시아정교회를 통해 주창하고자 한다. 이는 소비에트 유산의 종교적 전통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사실은 여전히 포스트소비에트 공간에서도 러시아정교의 종교적 의식은 하나의 이념적 관할권의 개념으로, 보편적 의식으로 재탄생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해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포스트소비에트 시기에 러시아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를 규정하는 주요한 논쟁점은 무엇일까 하는 담론이 제기될 수 있다. 현재 러시아사회의 논쟁점은 국가가 전통적 종교들, 특히 러시아정교회와의 공식적인 유대를 어느 선까지 유지하느냐에 있다.

서방에서 제기되는 국가와 교회와의 관계를 분석해보면, 첫째, 영국, 핀란드, 그리스 등의 "국교(state religion) 모델"이 있다. 둘째,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다원주의적 종교 모델"이다. 이중 독일은 교회와 국가의 합의에 의거하여 종교가 공적인 법인의 지위를 가진다. 셋째, 미국이나 프랑스의 "엄격한 분리형 모델"이 있다. 이때 일반적으로 종교는 세속국가의 일에 어떠한 간섭도 행하지 않는다.

사실상 국가-교회의 관계 문제가 현대 러시아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정교회를 국가로부터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오랜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베르켄은 1997년 새로 제정된 러시아 종교법을 근거로 러시아정교회는 교회-국가의 철저한 분리와 국가교회 사이의 중간 형태의 모델을 지향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셋째, 새로운 민주적 정체성이라는 이념이다. 소련 붕괴 이후에 러시아정교회는 러시아 민주사회의 이상에 따라 종교의 자유를 환영하였다. 정교회는 외면적으로 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수용하고 다원주의, 국제주의, 톨레랑스 라는 새로운 관념에 대해 적극적 수용 자세를 보이고 있다. 자유의 개념이 사회나 개인의 의식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포스트소비에트 시기에 들어서 러시아정교회가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