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전통의상의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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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전통의상의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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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후반에는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러시아 정체성에 대한 강조가 나타났으며, 그 가운데 러시아인의 타자로서 러시아제국에 살고 있는 다양한 민족들에 대한 ‘발견’이 일어났다. 러시아의 정부관리, 병사들, 교사들, 의사들, 성직자들, 문학가들, 여행가들, 그리고 그들?아내와 딸들뿐만 아니라 타국의 외국인들이 중앙아시아로, 카프카즈산악지역으로, 그리고 시베리아 지역으로 들어갔으며, 다채로운 문화를 가진 다양한 민족들과 조우하였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쏟아져 나온 여행기들, 수많은 삽화와 도상들 속에 소수민족들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포함되었는데, 그것은 보통 관찰자들 스스로가 ‘타자’에 대해 지녔던 열망, 공포, 판타지 등이 반영되어 있기 마련이었다. 다시 말해, 그들이 제국안에 살고 있는 다양한 민족들과 마주쳤을 때, 그리고 그들의 눈에 비친 ‘타자’에 대한 대부분의 기록들은 실체의 반영이라고 여긴 관찰자들의 ‘상상의’ 산물 혹은 관찰자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구성’되고 ‘발견’된 산물이기가 쉽다.

 

그러한 정보들 가운데는 러시아와 외국의 여행가들, 화가들, 판화가들의 작업은 매우 독보적이다. 그들의 작품들은 무엇보다도 러시아제국 안에 얼마나 다양한 민족들이 살고 있으며, 서로에게 어떻게 보였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 다민족 사이에서 살았던 러시아인들 스스로 자신들을 어떻게 보았는지, 그리고 외국인들이 러시아제국민들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보여준다. 삽화 속에 등장하는 모습들은 무엇보다 다양함과 다채로움이었다. 러시아인 여행가이자 판화가 에멜리얀 코르네예프(1782-1839), 독일 출신의 귀화러시아인이며 민속학자이자 화가였던 이오안-고틀립 게오르기(1729-1802), 프랑스 출신의 화가로서 러시아에서 수년 동안 살았던 장-밥티스트 르 프랭(1734-1781), 구스타프-페오도르 파울리(1817-1867), 저명한 러시아민속 콜렉터 나탈리야 샤벨스카야(1841-1904) 등 셀 수 없이 많은 예술가들이 러시아제국의 다민족, 다인종에 대한 화보들을 남겼다. 그 중 한 여행가의 화보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구스타프-페오도르 파울리(1817-19867, Густав-Феодор Христианович Паули)는 베를린 대학을 졸업한 독일인 출신이지만, 러시아로 귀화하여 1841년 이래로 러시아의 군대에서 봉사했으며, 1857년부터는 '러시아제국지리학회'의 회원이 되었다. 그의 엘범 “러시아의 제 민족들(Народы России)”은 1862년에 러시아건국 1천년을 기념하기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출간되었다. 수많은 민속학자들이 “러시아의 제 민족들” 콜렉션 작업에 참여했으며, 이 콜렉션에는 19세기 러시아 제국 안에 거주했던 민족들의 의복, 생활양식, 그리고 관습을 묘사하였던 러시아와 해외의 화가들의 드로잉이 포함되어 있다. 파울리는 자료의 수집, 분석, 편집, 출간의 모든 작업을 총 지휘하였다. 이 콜렉션 도록은 현재 모스크바 국립중앙극장도서관(The State Central Theatre Library)에 소장되어 있다.


 

슬라브민족의 전통의상


 

그러면, 삽화 속에 나타난 민족들의 의복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공통점은 오랜 세월동안 농민의 의복이 디자인과 장식에 있어서 변화를 겪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것은 농민의 보수적인 생활양식,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온 관습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표트르대제의 개혁은 주로 도시인구의 의복에 변화를 주었으며, 농민들의 의복과 의생활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농민의 의복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도시양식의 패션이 농민의 생활양식에 변화를 주었던 19세기 말에 가서야 변화를 겪었다.

 



                    

                    <좌> 대러시아인의 전통복장                <우> 벨라루시인의 전통복장

 

특별한 관심을 끄는 것은 농민여성들의 의복인데, 세대와 세대를 거쳐 어머니와 딸들을 통해 전수된 의복은 솜씨좋은 최고의 장인과 다름없는 여성들의 창조적인 가능성, 상상력과 기술을 보여준다. 아울러 아름다움에 대한 당대 사람들의 생각을 간접적으로나마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여성들의 옷은 고대 이래로 단순한 라인이 보존되었다. 쭉 뻗은 셔츠, 그리고 아래로 치마단이 넓게 퍼지는 긴 소매의 사라판, 스커트, 에이프런은 여성의복의 기본 요소인데, 디테일, 색깔, 장식은 러시아의 지역마다 매우 달랐다.



셔츠는 보통 리넨으로 만들어졌는데, 여성들은 그 위에 다양한 색실과 실크로 수를 놓았다. 자수는 매우 다양한 무늬로 이루어졌는데, 종종 상징적 의미를 지녔다. 어떤 무늬들은 그 기원이 멀리 이교신앙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라판은 주로 러시아 북부와 중부에서 입었다. 사라판은 크게 일상적인 평복과 축일에 입는 예복 등 두 종류로 나뉜다. 일상복의 사라판은 거친 천으로 만들어지고 단순한 격자무늬 장식을 하는 정도의 검소한 복장이다. 그에 반해, 축일의 예복으로 입는 사라판은 맵시있는 천으로 만들어지고 풍부하고 세심하게 놓은 자수, 단추, 레이스, 끈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그러한 사라판은 가족의 유물로서, 잘 간수되어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졌다. 스커트는 파뇨바(понёва)라고 부르는데 어두운 색의 가정용 모직으로 만들어지며 남부러시아 여성들의 가장 특징적인 옷이다. 축일용 파뇨바에는 보통 밝은 색 리본을 덧대어 장식하고 색실을 이용해 화려하게 수를 놓았다. 여성들은 사라판과 파뇨바를 입고 그 위에 꼼꼼한 수가 놓여진 에이프런을 둘렀다.


러시아 민족의상에서 여성의 머리장식은 상당히 다양하다. 가장 기본적인 머리장식은 코코쉬니크(Кокошник)라고 부른다. 기혼여성과 미혼여성의 머리장식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평상시에 소녀들은 머리를 덮지 않지만, 기혼여성들은 머리카락을 가려야 했으며, 따라서 축일에 착용하는 기혼여성의 머리장식은 주변을 둥글게 묶거나 왕관처럼 위에 착용하는 방식으로 머리장식을 썼다. 머리장식은 수를 놓은 천과 진주, 비드, 황금자수를 놓은 천으로 장식되었다. 코코쉬니크는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부르며, 장식의 모양은 매우 다양하다.

 

남성들의 복장은 여성들만큼 다양하지는 않았다. 일상복은 가정에서 짠, 아무런 장식이 없는 천으로 만들어진 바지(порты)와 목 깃이 높은 셔츠로 구성된다. 축일용 셔츠는 실크나 시판되는 천으로 만들어지고 자수가 놓여졌다. 셔츠는 바지 위로 입었으며, 종종 끝자락에 술이 달린 끈을 셔츠의 허리 부분에 둘렀다. 남성들의 머리장식은 특별한 것이 없고 다만 펠트로 만든 챙이 없는 긴 모자, 챙이 있는 모자, 모피모자 등을 썼다.


 

카자키의 전통의상


 

콜렉션에는 카자키에 대한 드로잉도 자주 포함되었다. 전통적으로 카자키는 농민출신들로 군역에 종사하였는데 러시아제국의 외곽지역에 정주하였다. 그들은 비러시아인들 가운데 살면서도, 자신들의 생활방식, 의복, 어떤 의례와 관습을 보존하였다. 카자키의 복장은 러시아인, 폴란드인, 타타르인 민족복장의 여러 다양한 요소들이 섞여있는데, 특히 여성들의 옷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났다. 예를 들어 돈 카자키의 마을들에서 여성들은 길고 넓은 바지인 샤로바리(шаровары)를 입었고, 우크라이나 카자키의 마을들에서 여성들의 머리장식은 폴란드인의 그것을 닮았다.
 

<화보>
          
  <좌> 카자키 정규부대원의 복장                       <우> 카자키 남성과 여성의 전통복장

                                       

                                        <중앙> 우랄 지역의 카자키 복장

 
비록 남성 카자키복장은 거주하는 장소마다 달랐지만, 그것은 어떤 공통점이 있었다. , 겉옷 카프탄, 셔츠를 바지 위로 꺼내서 입거나 투르크 식으로 셔츠를 바지 속으로 넣어 입었다. 셔츠 위로 벨트를 하였으며, 그 위에 기병도를 채웠고, 말을 탈 수 있도록 부츠를 신었으며 머리에는 천이나 양피로 만든 모자를 썼다.


 
 

볼가 지역 제 민족들의 전통의상



타타르인, 추바쉬인, 바쉬키르인, 마리인(Мариец, 핀란드 동쪽에 거주하는 예전의 체레미스인), 몰도바인, 칼미크인, 우드무르트인(뱌트카, 카잔, 오렌부르크 등지의 핀족으로 예전의 보탸크인Вотяк)는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볼가 강이 흐르는 주변 지역들에 살았던 민족들이다. 통이 넓은 바지 샤로바리, 튜닉 같은 셔츠가 남녀 의복의 기본 복장이며, 그 위로 소매없는 겉옷이나 카프탄을 입었다. 그들은 나무껍질로 만든 신발과 목이 긴 가죽부츠를 신었다. 이러한 기본요소들은 비슷하지만, 이 지역에 살았던 민족들은 옷의 색깔, 장식, 모자 등이 매우 달랐다.

 



                    
                      
                       <좌> 크림지역의 타타르인 전통의상   <우> 우르무르트(보탸크)인 전통의상


 
  
             
               <좌> 카잔의 타타르인 전통의상               <우> 칼미크인 전통의상


 
카프카스 산악민족들의 전통의상


 

북카프카스와 다게스탄의 여러 민족들, 즉 체첸인, 아바르인, 체르케스인, 카바르디아인, 레즈그인 등의 의복에도 공통점이 많았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자연조건이 비슷하고 전투적 생활양식이 비슷한 데서 비롯된다. 남성들은 평일에 퀼트로 된 코트 베쉬메트(бешмет), 특별하게 절개된 바지를 입었으며, 축일에는 바쉬메트 위에 허리가 높이 달린실 실외용 외투 시르카시안 코트를 입었다. 그리고 가슴 양쪽에는 ‘가지르니찌’라고 부르는 주머니가 달려있는데 그 안에 총을 넣을 수 있도록 작은 부분으로 나눈 독특한 모양의 주머니였다. 머리에는 양피나 아스트라한 산 양털로 만든 높은 털모자 파파하(папаха)를 썼다. 산악민족의 의상답게 남성들은 단도, 총알, 기병도를 착용하였다. 펠트코트는 혹한의 바람으로부터 말탄 병사들과 말을 보호해주는 기능이 있었다. 뒤축이 없고 박음질 하지 않은 생가죽 신발은 산악지방에 알맞았다. 여성들 의복의 실루엣은 신체의 우아함을 강조하였다. 축일의 옷은 황금자수, 가는 끈, 꼬아서 만든 여러 종류의 끈 등으로 장식이 되었다. 가장 흥미로운 장식들 중 하나는 가죽이나 천으로 만든 벨트인데, 버클과 팬던트로 세심한 장식이 이루어졌다. 이것은 매우 귀중하게 다뤄졌으며 가족 대대로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여성들은 은으로 만든 귀고리, 반지, 갑옷, 팔찌 등을 장식하였다.

 

<화보>

 
                     
                 
                    <좌측부터 순서대로>체첸인, 레즈그인, 쿠르드인, 아르메니야인 전통의상 

 

 

시베리아지역 제 민족들의 전통의상


 

시베리아 지역에 사는 다양한 민족들 가운데 부랴트인과 야쿠츠인의 의복은 매우 비슷했다. 그들은 비록 자연조건, 생활양식, 종사하는 일에서 차이가 있지만, 의복의 질은 매우 높았다. 남성들은 카프탄을 입고 좁은 가죽 바지와 긴 가죽신을 신었다. 축일용 카프탄은 화려한 색깔의 천으로 장식되었고 넓은 실크 허리띠로 묶었다. 여성들은 오직 축일에만 가장자리에 모피를 댄 긴 옷이나 실크드레스를 입었으며, 그 위에 아름다운 실크 벨트를 두르고 은과 동으로 만들어진 귀거리, 목거리, 팔찌로 장식을 하였다.

 

<화보>

             
                                                 
      
                                                    바이칼 지역의 부랴트인 전통의상

 

 

극동지역 제 민족들의 전통의상

 


극동의 제 민족들, 즉 네네츠인(Ненецы), 코랴크인(Коряки), 한티인(Ханты, 옛 이름은 오스탸키인Остяки), 축치인(Чукчи) 등은 극지방의 기후에 맞는 복장을 하였다. 옷의 주요 기능이 혹한을 막는 것에 있었으므로 일반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옷은 외형에서 크게 구별되지 않았다. 차이는 주로 모피에 있었다. 여성들은 무겁지 않은 부드러운 모피를 입었다. 겨울에는 두껍고 헐렁한 셔츠, 바지, 그리고 목이 높은 부츠를 신었다. 바지는 안감에 모피를 덧대어 바느질을 하였으며, 셔츠도 역시 두겹의 모피로 안감을 대서 바느질하였다. 그 위에 마지막으로 벨트로 묶었다. 그들의 민간신앙에서는 칼, 숫돌, 그리고 곰의 엄치 이빨은 악령으로부터 사냥꾼을 보호하고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있어 사람들은 벨트에 그것을 부착하였다. 그리고 두건과 벙어리장갑을 셔츠와 함께 부착해 두었다. 여름의복은 겨울의복과 비슷한데, 부드러운 가죽을 1겹으로 입는다는 차이가 있었다. 여름 옷은 보통 숫사슴, , 바다생물의 가죽으로 만들어 입었다.

 

<화보>

                            

     

                          <좌> 캄차달인의 전통의상                    <우> 유라크인의 전통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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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Костюм народов России в графике 18-20 веков, Вриб: M., 1990.